로고가 막 움직이는데 “우린 스마트폰을 정말 많이 봐요. 아침에 눈 뜨면서 보고 자기 전에도 보고, 마치 사이보그 같아요. 스마트폰은 부속품이고, 우리 아이들은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난 것 같아요.” - 그래픽 디자이너 아론 드래플린의 한탄 드래플린의 비유는 좀 독특하긴 하지만, 그가 이렇게 비꼬는 건 자신의 업계와 꽤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젠 조그만 스크린으로 회사, 제품, 사람과 소통하는 시대가 됐으니 브랜딩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로고는 더 작아져야 하고, 작지만 잘 보여야 한다. ‘좋았던 그 시절’엔 로고를 항상 인쇄했고, TV용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시작점이 항상 우리 주머니에 있는 스크린이다. 잘 만든 로고는 지면이든 화면이든 어디서나 효과적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오래된 브랜드는 움직이는 로고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다. 코카콜라도 애니메이션 버전으로 로고를 디자인한 적이 없다. 새 브랜드의 경우 고려해야 할 문제는 바로 ‘지속성’이다. 금방 사라질 게 아님을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관심을 끌어야 한다. 로고의 유연성이 중요하다는 건 물론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기업 브랜딩이 시작되던 때부터 로고 디자이너들은 명함에서든 전광판에서든 로고를 보기 좋게 디자인해야 했고, 사탕 포장지에서도, 버스 옆면에서도 알아볼 수 있게 해야 했다. 크기를 바꿨는데 이상해 보이면 큰일 나는 거였다. 솔 바스와 폴 랜드에게 배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하지만, 지금은 랜드와 바스의 시대와 다르다. 로고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것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젠 스크린상에서 로고가 움직이고, 소리를 내고, 형태가 변한다. 로고가 어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보다 더 큰 변화는 로고의 상징성이다. 디자인스튜디오DesignStudio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스 존스Alex Johns는 현재 우리가 브랜드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도 더 감성적이 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이폰 같은 제품이 떠오르면서 우리가 브랜드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더 개인적으로 변했고, 상호작용도 더 자주 하게 됐다. 예전의 브랜드 로고가 기업의 약칭 같은 역할에 그쳤다면, 지금은 전체 시스템의 핵심이다. 로고에 새로운 가능성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마침 소프트웨어도 뒷받침해 주니, 오늘날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는 선배들의 선례를 뒤엎으며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로고가 디자이너들에게 손쉬운 실험과 모험의 가능성을 제공하는가? 많은 이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 기술은 이로운가 폴 이보우Paul Ibou와 최근에 《상징으로서의 글자 Letters As Symbols》라는 책을 함께 저술한 벨기에 출신 그래픽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드 펠스마커Christophe De Pelsemaker는 기술이 훌륭한 로고 디자인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컴퓨터는 우리가 더 많이 실수하게 만들어요. 이게 반드시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죠. 스크린에 뭔가 올렸는데 마음에 안 들면 지우면 그만이에요. 과거엔 디자이너들이 종이에 선 하나라도 그으려면 콘셉트부터 생각해야 했어요. 콘셉트 없이는 훌륭한 걸 만들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있어서 많은 디자이너가 콘셉트나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단계를 건너뛰죠. 그래서 요즘은 예전만큼 훌륭한 로고 디자인이 없는 것 같아요.”전 코카콜라 부사장 서머빌도 같은 생각이다. “디자인 실력이 많이 줄었어요. 이젠 모든 게 너무 빠르고 반복하는 것도 쉬워져서 로고의 수명도 많이 준 것 같아요. 아이덴티티의 수명이 짧아져서 모든 게 일회용처럼 돼 버렸어요. 살아남는 디자인이 훌륭한 디자인이죠.” 실제로, 위트 넘치는 탁월한 유명 로고들은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인 것이다. 랜도 어소시에이츠Landor Associates를 위해 린던 리더Lindon Leader가 1994년에 디자인한 페덱스의 숨겨진 화살표를 생각해보자. 이런 디자인은 지금보다 소프트웨어 가능성이 훨씬 제한적이던 시절에 나온 것이다. 또한,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V&A) 로고로 유명한 앨런 플레처Alan Fletcher 같은 사람은 지금과는 다른 구조에서 일했을 것이다. 서머빌은 ‘대다수의 유명 로고는 훌륭한 디자인과 광고가 로고 하나에 결합된 경우’라고 말한다. 예컨대 V&A 로고 같은 경우 스토리텔링이 있어서, 포스터에 이 로고 하나만 있어도 광고가 된다. 하지만, 지면에 실린 로고 하나만으로 광고가 되던 시대는 갔다. 이젠 아이덴티티 시스템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 역시 여러 가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로고만 만들어 놓고 끝인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로고에 적용될 애니메이션, 사람들의 반응, TV 광고, 앱스토어의 아이콘, 웹사이트 헤더 애니메이션, 움직이는 전광판 등을 생각해야 한다. 가장 흥미롭고 가장 효과적인 로고를 만드는 디자이너라면 종이에 그려진 상태뿐 아니라 소비자의 다양한 일상 환경에서 아름답게 움직이는 형태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움 vs 새로움 훌륭한 로고에 관해 좀 아는 스튜디오가 있다면 그건 바로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튜디오 덤바Studio Dumbar다. 거트 덤바Gert Dumbar가 1977년에 세운 이 회사는 네덜란드 철도공사, 암스테르담의 네모NEMO 과학박물관, 네덜란드 정부, 경찰청 등 기업 그래픽에 있어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회사 이력이 이렇게 대단한데도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리자 에네바이스Liza Enebeis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소위 디자인 ‘황금기’의 추억에만 젖어 있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과 얘기를 하면 항상 옛날(그분들이 10대였던 시절)이 더 좋았던 것처럼 말씀하시잖아요. 많은 디자이너가 1960년대나 모더니즘 시대의 기업 디자인이 참 대단하고 지금보다 더 낫다고 말하지만, 가능성은 지금이 더 많아요. 로고와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다양한 플랫폼과 미디어에 맞게 만들고, 브랜딩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을 재정립할 수 있어요. 지금 할 수 있는 게 더 많죠. 분명 엄청난 도전이고, 자신이 만든 디자인을 돋보이게 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단순함에 관하여 최근 브랜딩 업계를 지배했던 모든 트렌드 중에, 다른 어느 것보다 끈질긴 게 있다. 바로 단순함이다. 평평함, 그리고 ‘자질구레한 요소들을 다 잘라낸 간결함’. 얼마 동안 단순함이 대세였고, 당분간은 이 트렌드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의 문피그Moonpig 리디자인을 보자. (흉물스럽긴 해도) 귀여운 돼지가 평평하고 단순하면서도 아이들 파티 같은 새로운 모습과 느낌에 밀려났다. 펜타그램은 마스터카드 로고를 리디자인하면서 완전히 기본적인 구성 요소만 사용해서 2개의 평평한 원을 겹쳤고, 워드마크는 안전하고 보기 좋은 산 세리프의 FF 마크로 모두 소문자로 돼 있다. 여러 디지털 플랫폼을 위해 로고를 최적화하는 게 주요 목적이었으니 충분히 이해되는 리디자인이다. “그래픽이 다 똑같아졌어요.”라고 디자이너스 리퍼블릭Designers Republic의 창립자 이안 앤더슨은 말한다. “이건 어느 한 디자인이나 디자이너의 잘못은 아니지만, 현실이 그래요. 모든 걸 단순화하면 남는 건 모양, 형태, 컬러, 조합뿐이고 이후엔 그냥 계속 반복하게 되는 거죠.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브랜드 메시지, 브랜드 가치, 제품 등등을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로고 디자인을 평평하게 하면, 누군가 이런 스타일을 따라 하는 건 너무 쉽다는 거예요. 결국 아이디어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고, 굉장히 게을러지는 거죠.” 《아이 온 디자인Eye on Design》의 편집장 리즈 스틴슨Liz Stinson은 지난 몇 년간 산 세리프, 흑백 컬러, ‘무난한 사진’ 위주였던 상업 그래픽 트렌드를 일컬어 ‘밀레니얼 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스틴슨에 따르면 이 트렌드는 디지털 중심 전략에 의해 탄생했는데, 이러한 미니멀한 로고가 조금씩 변형되면서 몇 년 동안 계속 반복되는 현상이 이어졌다. 그 결과, 대다수의 업계종사자가 추측하듯, 천편일률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단순함이 근본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지난 몇 십 년간 최고로 꼽히는 로고 디자인 중에도 굉장히 절제된 것들이 있고, 앞서 언급한 V&A 로고가 좋은 예다. 클래식하면서도 동글납작한 앰퍼샌드로 A 형태를 세련되게 만든 이 로고는 여전히 참신하고 당당해 보인다. 1990년에 만들어진 이후로 디자인이 바뀌지 않는 게 이해가 간다. 디자인 브리프에는 단 3가지 글자(V&A)로만 만들어져야 하고, 기능적이고 유행을 타지 않아야 하며 기억하기 쉽고 적절해야 한다고 돼 있었다. 지금까지도 박물관 캠페인에 로고가 꾸준히 사용되는 걸 볼 때, 그의 디자인은 분명 성공적이다. 로고의 완벽함은 로고를 만드는 오늘날 디자이너들에게 꿈이자 섬세한 균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듯, 단순하다고 해서 다 똑같다고 보는 게 어쩌면 좀 불공평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너무 구식으로, 또는 약간 근시안적으로 로고 하나만 보고 브랜드를 판단하는 걸까? 로고는 현대의 환경에 발맞춰 애니메이션이 들어가고 인터랙티브해져서, 미묘한 ‘시스템’을 가지게 되었는데도? 너무 섣부르게 판단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로고 움직이는 로고 디자인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건 이중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로고가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훨씬 더 다양한 그래픽 결과물의 일부가 돼서 로고의 역할 비중이 줄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젠 심벌이 다가 아니다. 에네바이스는 말한다. “디지털 플랫폼이나 앱에서 로고를 보면 로고의 움직임이 아이덴티티를 정의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걸 생각하지 않았죠. 이젠 이게 정말 중요해졌어요.” 청소년체육재단과 청소년문화재단Jeugdfonds Sport & Cultuur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스튜디오 덤바는 먼저 움직이는 상태로 스케치한 후에 필요할 때마다 움직임을 스틸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결과물은 굉장히 밝고 에너지가 넘치며 긍정적인 분위기다. 청소년들의 잠재능력을 끌어내고, 그들을 존중하면서 직접 다가가는 브랜드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런 프로젝트는 로고가 단독 개체인 동시에 더 넓고 다이내믹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다른 덤바의 프로젝트는 이런 접근 방식이 젊은 층이나 발랄함을 추구하는 브랜드뿐 아니라 좀 더 전통적인 기관의 경우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바로크에서부터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진 현악 오케스트라인 암스테르담 신포니에타를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는 대중 인식을 새롭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덤바는 현대 기술을 십분 활용해 대담한 로고타입과 타이포그래피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했는데, 이것은 소리에 반응해 각 연주의 음악적 주제에 그래픽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2018년 초에 디자인스튜디오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신생 데이터업체 타입폼을 위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했는데, 피카소와 미로 같은 스페인 화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이 아이덴티티는 로고가 중심이 되는 전통적인 시스템 대신에 모션을 택했다. 로고 자체가 ‘살아 있고’ 변할 수 있고, 복잡한 데이터든 좀 더 추상적인 감정이든, 요인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띨 수 있도록 했다. 알렉스 존스는 말한다. “고객들은 흥미로운 도전 거리를 저희에게 가져옵니다. 디자인계가 변했어요. 5년, 10년 전만 해도 디자인은 컬러, 로고, 서체가 전부였는데, 이젠 움직이고 인터랙션도 해야 하죠. 클릭하고, 옆으로 넘기고, 탭하는 방식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해졌어요. 아주 새로운 것이죠. 로고가 할 일이 많아졌는데, 로고 하나만으로 모든 기능을 감당하지는 못해요. 로고라는 게 새롭게 정의되면서 인식도 달라지고 있어요.” 따라서 디자인 시스템에 여전히 로고가 포함되지만, 지면 캠페인, 패키지 외에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는 많은 브랜드의 경우 사운드와 모션은 명함을 눈에 띄게 만드는 것만큼 필수적이다. 중요한 건 민첩함이다. ‘훌륭한’ 로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훌륭한 로고의 조건으로 ‘스토리’가 있다. 로고 디자인에 이야기와 의미를 강조하는 건 전혀 특이하지 않다. 이안 앤더슨은 디자인 비전공자인 것으로 유명한데(철학 전공), 그의 작품 콘셉트가 탄탄한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항상 사람, 사람이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그 이유를 이해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의 작품은 신념 체계의 영향을 받았는데, ‘왜 사람은 파리가 아니라 신을 믿을까?’, ‘왜 우린 우리가 믿는 대로 행동할까?’와 같은 궁금증들이 로고 디자인에 투영된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건너뛰고 브랜딩의 재밌는 부분으로 바로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가 그래픽 디자인에서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부분은 무엇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지, 어떻게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형태나 특정 트렌드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과시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디자인은 늘 겉모습에 더 치중하게 될 거라고. 그는 보기 좋고 의도에 적합하고, 의미(이야기)가 있는 디자인을 원한다. 그것이 또한 좋은 로고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누구나 동의할 만큼 훌륭한 로고는 어떻게 디자인하나? 드래플린이 지적하듯이, 진정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훌륭한 디자인은 최신 유행에 굽실거리지 않아야 가능하다. 최신 트렌드나 스타일을 너무 따라 하지 않아야 한다. 유행은 떴다가 사라지지만, 명확함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적절한 프로젝트를 위해 적절한 디자인을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타이포그래피 형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 상황을 이해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음악앨범 디자인이든 코카콜라든, 대상 소비자와 제품을 이해해야 하고, 이 둘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생각해야 하죠. 앨범을 만드는 이유가 뭔지, 코카콜라가 왜 신제품을 론칭하는지, 디자인으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대상 소비자가 가장 잘 반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풀어가야 해요.” 그가 디자인한 워프 레코드Warp Records 로고를 예로 들어보자. 워프 레코드는 획기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잘 알려진 레이블이다. 로고를 미래적이면서 최신 감각으로 유지해야 했다. ‘미래적’인 건 그런 미래가 오지 않기 때문에 금방 구식이 돼 버린다. 그래서 잘 알아볼 수 있는 로고와 컬러를 썼다. 최종 로고 디자인은 옆으로 늘린 격자무늬 행성 같은 형태 안에 지그재그 모양이 있는데, 만화책에서처럼 ‘휙!’ 하는 느낌이고, 브랜드 고유 컬러인 자주색으로 쓰이기도 한다. “옛날 싸구려 공상과학 만화 같은 느낌이 있죠. 50년대, 60년대 공상과학물 대부분이 이미 오래돼서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포지션일 거예요. 복잡한 메시지일수록 단순하게 해야 한다고 워프 측에 말했죠.” 우리가 앞서 얘기했듯이 단순함이 반드시 지루함을 의미하는 바는 아니다. 밋밋한 미니멀리즘과 스마트한 미니멀리즘의 차이는 마크 하나에 브랜드의 본질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능력이다. 훌륭한 로고 디자인은 회사나 브랜드나 제품을 알리는 단순하고 효과적이며 알아보기 쉬운 심벌이며 사용자와 긴밀하게 소통한다. 물론 로고의 성공은 경우에 따라 굉장히 다르다. 직접적이든 추상적이든, 브랜드의 본질을 진실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피터 사빌이 최근에 리디자인한 버버리 로고를 예로 들어 보자. 기본적으로 단순해졌다. 하지만, 굉장한 건 버버리가 단순한 로고 그 이상이라는 점이다. 정답을 찾으려면 회사의 핵심을 생각해봐야 한다. 또, 샤넬의 시대를 초월하는 서로 맞물린 ‘C' 마크도 단순한 로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아름답고 단순한 타이포그래피이면서도 브랜드의 본질을 인상적으로 담아낸다. 패션계 외에서는 솔 바스의 벨 시스템Bell System 로고가 있다. 브랜드는 이제 더 이상 없지만(회사는 1984년 폐업했다), 로고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작은 원 안에 종이 있는 게 전부지만, 완벽하게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 명확성이라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적인 로고의 단순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명확성은 우리가 상호작용을 통해 브랜드를 인지하면서도 느낄 수 있다. 좀 더 폭넓은 가치나 세상에서의 입지를 통해, 그리고 좀 더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말이다. 디자인 결과물은 이전과는 굉장히 달라졌다. 더 흥미롭고 더 자유로워졌다. 존스가 생각하는 디자인스튜디오의 디자인 철학은 ‘직면하고 도전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믿음이다.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소비자들이 변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도 변해야 합니다. 로고나 명함 디자인을 할 경우에도 브랜드를 충분히 이해하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이해한 다음에야 어떤 디자인이 나와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요.” 또한, 존스는 로고가 반드시 뭔가를 대표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에 흥미로운 반론을 제기한다. “로고가 왜 꼭 무슨 의미가 있어야 하죠? 그저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흥미롭거나 관심을 끌기만 할 수도 있죠. 시적일 수도, 재밌을 수도 있고요. 로고는 이제 더 이상 브랜드의 중심이 아니에요. 이젠 분산됐죠. 소비자가 브랜드를 처음 대하는 게 지면 캠페인이나 제품 외에 다른 것을 통해서일 수도 있어서 이런 점이 정말 흥미로운 거예요.” 오늘날 로고들, 특히 신생 디지털 업체들의 로고가 다 똑같다고 구구절절 늘어놓긴 쉽겠지만(게다가 많은 사람이 이걸 즐긴다), 차분히 앉아서 우리가 뭘 평가하고 있으며 왜 그렇게 평가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일 수 있다.이제 진정한 디자인은 없다고 로고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아마도, 로고 디자인이 정말 진부하거나 지루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구시대적인 기준으로 로고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발행된 묵직한 《스탠더드 매뉴얼 Standards Manual》을 찬찬히 살펴보거나 랜드, 플레처, 셰마이에프Chermayeff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찬양하는 것도 좋지만, 2018년 현재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이런 디자인이 당시에 ‘훌륭한 디자인’으로 인식됐다기보다는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과거를 무조건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빔 크로우웰Wim Crouwel 같은 사람이나 하미시 무이르Hamish Muir의 옥타보8vo는 한계를 뛰어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향수에만 젖어 있지 않고, 그 로고들이 실제로 무엇을 대변했는지 생각해보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진정한 디자인 실력이나 기술이 확보되어 새로운 디자인에 적용돼야겠지만. 뻔한 얘기로, 정말 훌륭한 디자이너는 과거를 존중하면서 현재를 만들어나가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