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씩씩한 우리들이 입었던 사쿤은어디에나 있다.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를 보고 있자면, 폭발하는 자기표현 욕구가 덩달아 살아난다. 비트 위에 공격적으로 토해내는 그들의 이야기는 펄펄 날듯 자유롭다. 떠오르는 게 있었다. 십여 년 전, 삐딱한 선배들이 입던 반항적인 이빨 로고의 옷과 신발. 일본이나 미국 어디쯤의 브랜드겠거니 했던 사쿤은 장승과 도깨비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으로, 말하자면 철저히 한국인이다. 사쿤의 디렉터이자 디자이너인 쿤은 흔쾌히 말한다. 사쿤은 한국의 1세대 스트리트 브랜드였다고. 브랜드 쿤스는 디자인, 회화, 그래픽, 캐릭터, 일러스트, 출판, 인테리어, 패션, 제품, 뷰티, 아트 토이 분야로 활동해왔다. 또한 벤츠, 클래시오브클랜, 지포 라이터, 푸마, 레드불, 삼익 기타, 네이버, 박카스 등 다수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해왔다. 앞으로 예정된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다수이며, 최근에는 쿤캣으로 중국 대형 백화점에 입점했다. 사쿤과 인터뷰가 진행된다고 알리면서 인스타그램으로 질문을 미리 받았어요. ‘아, 예전에 완전 유행했었는데’, ‘오랜만이네.’ 이런 반응들이 많았어요. 2000년대 사쿤 인기 많았죠.맞아요. 인기 엄청 많았어요(웃음). 이런 반응들을 알고 계셨나요. 어떻게 생각하세요?사쿤은 곧 20주년이에요. 시작하자마자 큰 사랑을 많이 받은 덕에 ‘그땐 인기 많았는데.’라고들 하시죠.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셨나요? 사쿤이 태어난 이야기를 간단히 해 주세요.친구의 앨범 커버를 만든 게 시작이었어요. 콘셉트가 물고기였는데, 몸속 기생충이 물고기라는 발상으로 작업을 했어요. 그걸 본 가수 이정현이 ‘줄래’ 자켓 작업을 의뢰했고, 이후 음반 자켓을 주로 하게 되었죠. 한 번은 제가 사고를 쳤어요. 제 로고를 엄청 크게 넣은 거예요. “이게 당신 스튜디오 앨범이지, 가수 앨범이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소속사 대표가 화를 냈어요. 그때 생각해봤죠. 내 로고를 왜 크게 썼을까? 저는 제 걸 하고 싶었던 거에요. 자아상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자화상이 아닌, 자아(ego)상을요. 이빨이 많고 동공이 없이 흰자만 있는 분홍색 캐릭터가 만들어졌어요. 친구가 소시지 같다고 말해서 모욕감을 느꼈는데, 계속 소시지, 소시지 하니까 재밌더라고요. 소시지의 Sa에 보이의 군君을 합쳐서 불렀어요. 그게 사쿤이에요. 혼자 그린 사쿤은 어떻게 순식간에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요?작은 방에 책상을 두 개 넣고 내 회사라고 생각했어요. 벽과 바닥에 스프레이로 그라피티를 그리고 문에 그림으로 얼굴을 만들었어요. 내친김에 상상을 재현하기 위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미국도 안 가봤는데, 할렘가의 집처럼 꾸몄죠. 그리고 가상의 이야기들을 넣었어요. 사쿤의 브랜드 스토리부터, 가짜 기사, 사쿤 장난감을 상자 디자인까지 만들어 올렸어요. 쇼핑몰을 만들기에 이르렀어요. 옷을 업로드하고 문의가 오면, 아직 국내에선 만나볼 수 없다고 얘기했죠. 상상은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뒤에 정말로 사쿤 옷을 팔게 되었고, 저 때 디자인한 장난감도 딱 10년 뒤, 실제로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사쿤은 10대와 20대의 저에요.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야지.’가 아니고 나라고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걸 가져다가 편집한 것이었어요. 힙합처럼 세 보이고 록처럼 강해 보이려고 했어요. 초창기에는 마니아들이 아는 브랜드였어요. 빅뱅이 입고 텔레비전에 나오니까 사람들이 유행했었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이미 그 전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유행하고 있었어요. 그 질문도 있었어요. 빅뱅이랑 친하냐고.아니요. 반항을 이야기하는 사쿤과 저항을 담은 빅뱅이 통했다고 생각해요. 이미지는 언어고, 브랜드는 그것을 담는 그릇이니까요.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사쿤으로 콜라보레이션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한 50개쯤 한 것 같아요. 사쿤도 많았지만, 저의 또 다른 브랜드인 쿤캣이 콜라보는 더 많이 했어요. 메이크업과 쥬얼리 라인이 나오고 있어요. 독일의 유모차 회사랑 콜라보 진행 중이고, 미국 아트토이 회사랑 협업한 제품도 곧 나와요. 국내의 아트토이 회사와도 기획하고 있어요. 제주도와의 콜라보레이션도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호텔아트페어와 콜라보도 있어요.만들고, 팔고, 유통하는 데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라이센싱으로 넘어왔어요. 이럴 때 필요한 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에요.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걸 만들자고 시작한 게 콜라보레이션이에요.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성 때문에 더 혼자 만들 수는 없어요. 20년 동안 그림을 그린 저와, 다른 분야에서 20년을 한 전문가가 같이하면 얼마나 잘하겠어요. 매번 다른 분야를 연구하셔야겠네요?물어보면 되죠. “이렇게 하면 어때요?” 물어봤을 때, “이건 이런 이유로 안 됩니다.”라고 조언이 돌아오면 맞춰나가요. 쥬얼리 경우, 제가 뭘 알겠어요. 이런 게 예쁘겠다고 상상하면 그분들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죠. 베어브릭이나 벤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콜라보레이션의 묘미에요. 함께 고민하고 공유해서 새로운 관점을 만드는 것. 앞으로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디자인은 관점, 시선이라 생각해요. 저만의 시선으로 세상과 만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패션쇼나 도시 기획, 미디어 등의 프로젝트요.아, 이번 주 일요일에 중국에서 인터뷰 영상 촬영이 와요. 다음 달에는 <밀리언달러 피카소>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해요.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같은 아티스트 10명의 관찰카메라에요. 사쿤은 패러디나 공격적인 작업이 많았어요. 세월호 사건은 제 작업에 변화가 있던 시점이에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해 예술가로서 작은 목소리를 내는, 이유 있는 반항으로 변하기 시작했죠. SNS에서 가끔 보고 있어요.전 작업 속도가 빨라요. 생각하면 바로 작업하고, 그대로 업로드해요. 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소통하죠. 예전에 한국의 영웅 시리즈를 발매했어요. 오바마 대통령 얼굴과 HOPE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우리의 희망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 만든 패러디 작업이었는데, 깊이와 의미가 있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사회적 이슈와 그에 따른 생각을 그림으로 소통할 생각이에요?네. 숙명이라 생각해요. 죽을 때까지. 자유와 반항으로 브랜드가 성장하다 보니, 첫 시작이었던 미술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서 10년 전부터는 전시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쿤캣이 등장했죠. 숙종이 키우던 고양이가 있는데, 왕을 위로해주는 존재였대요. 쿤캣의 쿤은 임금 군 君이에요. 사쿤이 ‘나’였으면 쿤캣은 ‘너’에 관한 것이에요. 쿤캣이 한 마리에서 여러 마리가 되면서 ‘우리’를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사쿤도 숙종도 이야기를 나중에 붙이신 건가요? 브랜딩이자 스토리텔링을 하신 거네요. 이제 사쿤보다 쿤캣인가요?아뇨. 그렇지 않아요. 둘은 달라요. 사쿤은 한 명이에요. 사쿤의 적도 사쿤이죠. 사쿤은 강한 걸 증명하려 안달 내며 그렸어요. 한 번은 나흘 동안 라이브로, 신 내린 것처럼, 스케치도 없이 유성 매직으로 요마도를 그린 적이 있어요. 피 흘리고, 싸우고, 물어뜯는 그림이었죠. 사쿤은 오묘한 이빨을 가졌어요. 폭발하는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에요. 사쿤은 동공이 없어요. 눈은 뜨고 있지만, 실제로 상대를 보고 있지 않아요. 귀도 없어요. 남의 말 안 듣는다는 거죠. 안 보고 안 듣고 내 얘기만 하는 거예요. 디자인은 한 종류의 언어에요. 쿤캣은요?저의 30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쿤캣은 제 유아기에요. 분실된 것을 그려요. 쿤캣은 희, 노, 애, 락이라는 고양이가 편의점에서 만나 가족이 되는 이야기에요. 양쪽 색이 다른 오드아이를 하고 사람들을 쳐다봐요. 두 귀는 쫑긋 솟아 있어요. 사쿤이 거대하고 복잡한 그림을 그리려 했다면, 간결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한 번은 서랍 속에서 티티파스 크레용을 꺼내서 그리는데, 재밌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예민한 재료가 아니라 디테일한 걸 그릴 수 없죠. 그림이 단순해지고 동글동글해져요.요새는 버려진 책이나 교과서에 낙서하듯 그려요. 내가 봐도 행복하고 남이 봐도 행복할 수 있길 바라요. 숙종이 고양이에게 위로를 받은 것처럼. 독자 질문 중, 스트리트 시장에서 사쿤이 이대로라면 경쟁력을 잃는 게 아닌지 묻는 것이 있었어요.저는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스트리트 브랜드로 규정하고 싶지 않아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감옥에 있는 김우중 아저씨가 말했었죠(웃음). 기존 시장에 멈춰서, 예전에는 이랬는데 하면 꼰대에요. 쿤캣으로 두 번째 프로젝트를 한 지 6년쯤 되었어요. 예술이라는 큰 목적을 가지고 방향을 계속 찾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세요?저는 일상이 단조로워요. 의외네요.작업만 해요.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해요. 유흥을 즐기실 것 같았어요. 즐거움을 엄청나게 가까이 둔 삶을 살아가실 것 같은데요.친구 모임도 없고, 일단 친구가 없어요. 정말 작업 생각만 해요. 구슬 꿰기 부업 하듯, 영화 보면서도 그림을 그려요. 그림만 그리기에도 시간이 없어요. 작업 외 다른 취미가 없나요? 배워 보고 싶은 건요? 음악이라든지.배웠는데, 그만뒀어요. 음악을 온종일 듣긴 해요. 취미는 아니에요. 일상이죠. 전 정말 취미가 없어요. 음악 뭐 들으세요, 요새?블랙 핑크의 <뚜두뚜두>. 멤버 제니가 귀엽더라고요.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다른 그림이 나와요. 독일 ECM 레코드에서 발매한 앨범인 A.R.C를 작업할 때 자주 들어요. 재즈를 닮은 즉흥적이고 장난스러운 드로잉이 나와요. 작년까지는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 엄청나게 들었어요. 영화 <레버넌트>에 생사가 걸린, 죽다 살아나는 장면의 OST만. 영화는 두 번 보면 재미없는데, 음악은 계속 다른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자꾸 들어도 좋아요. 엽기적이게도 자면서도 들었어요. 사카모토의 음악은 공간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정말 취미가 없으세요?취미…는 왜 하죠? 아. 요리 잘해요. 요리도 그림의 영역이에요. 중국에서 가재 요리인 샤오롱샤를 먹었는데 맛있더라고요. 민물 가재를 이케아에서 사서 요리를 했어요. 그 날 스튜디오 식구들이랑 와인 파티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 그림 그리는 게 취미에요. 취미라… 학교 강의 나가는 정도? 마지막 질문이에요. 사쿤이라는 브랜드를 20년 혹은 그 이상 해오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만들기 잘했다.디자이너가 존경받고 주목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싶어요. 제가 놓치고 틀렸던 부분을 보며 후배 예술가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함께하며, 도와주고 싶어요. 이 인터뷰의 전문은 2018년 9-10월호 : '책 디자인의 구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